
"전면 재검토하라"는 대통령 말에도 그대로 국회로 간 주가누르기 방지법
정부가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법안이 별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국무회의에 올라간다면, 그 지시는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여론을 달래기 위한 제스처였을까. 2026년 8월 말 벌어진 '주가누르기 방지법'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이 바로 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정부는 원안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국회로 공을 넘기기로 했다. 코스피 5000,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국정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정부가 정작 대주주의 인위적 저평가 관행을 손보는 사안에서는 왜 이렇게 다른 태도를 보이는지, 그 배경을 뜯어볼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팩트부터 정리
주가누르기 방지법은 상장기업의 대주주가 지분을 상속·증여할 때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게 유지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먼저 발의했고, 정부는 2026년 8월 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자체 방안을 담았다. 정부 원안은 최근 6년6개월, 즉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이상 업종 내 하위권 PBR을 유지한 기업을 대상으로 평가심의위원회가 고의성을 심의한 뒤 상속·증여세 산정 시 순자산가치를 반영해 최대 30% 할증 과세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한국투자증권이 이 방안을 분석한 결과, 실제로 적용받는 상장사는 65곳에 불과했고 대주주가 개인인 기업으로 좁히면 43곳까지 줄어들었다. 2개 반기만 주가를 잠깐 띄우면 면책 범위에 들어간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이 대통령은 발표 직후 이 법안과 ISA 개편안 모두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지만, 2026년 8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ISA는 일부 수정하되 주가누르기 방지법은 정부 원안을 그대로 유지해 9월 1일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후 예산안과 함께 9월 초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며, 최종 기준은 국회 조세소위 논의 과정에서 결정된다.
왜 정부는 원안을 고수했나?
표면적인 이유는 재경부 관계자의 설명대로 "아예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라 정부가 실무적으로 손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더 구조적인 딜레마가 있다. 대안으로 거론된 이소영 의원안, 즉 PBR 0.8배라는 절대 기준을 적용하면 대상 기업이 전체 상장사의 49%까지 확대된다. 정부 원안의 65곳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다. 문제는 PBR이 낮다고 해서 전부 대주주가 의도적으로 주가를 눌러왔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자본집약도가 높고 구조적으로 자기자본이익률이 낮은 산업은 주가 누르기와 무관하게 원래 PBR이 낮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법상 원칙인 '시가 우선'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그리고 부실기업의 가치가 자산가치 기준으로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부작용까지 겹치면서 정부로서는 절대 기준을 섣불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좁은 적용 범위의 원안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고, 논란이 큰 결정을 국회로 떠넘긴 셈이 됐다.
대조되는 사례, 중복상장에서는 왜 달랐나
흥미로운 건 같은 정부가 불과 몇 달 전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2026년 1월 LS그룹이 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을 추진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의원들에게 LS 사례를 직접 거론하며 중복상장에 경고성 발언을 이어갔다. LS는 소액주주 대상 기업설명회까지 열며 상장 의지를 보였지만, 대통령 발언 이후 한 달도 안 돼 상장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이후 2026년 7월 6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은 물적분할 자회사에 3%룰을 적용해 모회사 소액주주 동의를 사실상 의무화하는 강력한 내용을 담았고, HD현대로보틱스나 SK에코플랜트 같은 대기업 계열사들의 상장 일정에 실제로 제동을 걸었다. 같은 정부가 한쪽에서는 대통령 말 한마디로 대기업의 상장 계획을 접게 만들었으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재검토 지시를 스스로 무력화하며 원안을 그대로 국회에 넘긴 것이다. 이 온도차를 두고 필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이해관계자의 규모와 성격이다. 중복상장은 모회사 소액주주 수십만 명의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문제라 정치적으로 강하게 밀어붙일 유인이 크지만, 주가누르기 방지법은 몇몇 대주주 일가의 상속세 문제라 파급력이 훨씬 좁고 재계 전반의 조직적 반발에 부딪히기 쉽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이는 확인된 사실이라기보다 두 사례를 비교하며 필자가 내린 판단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지수는 밀어붙이고 구조개혁은 머뭇거리는 패턴
이런 선택적 실행은 코스피 5000 정책 전반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 정부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2026년 2월 25일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등 제도적으로는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결과 코스피는 목표했던 5000선을 넘어 한때 9000선까지 치솟았지만, 이 과정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허용이나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확대 같은 조치들이 시장 변동성을 키웠다는 비판도 함께 나왔다. 지수라는 눈에 보이는 목표에는 화끈하게 힘을 쏟으면서, 정작 대주주 승계 관행처럼 구조적이고 민감한 개혁 과제 앞에서는 재검토 지시조차 실제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시장과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영향
가장 직접적으로 이 흐름을 지켜봐야 할 곳은 저PBR 지주사들이다. 2026년 8월 29일 기준 주요 지주사의 순자산가치 대비 할인율은 한화 64.3%, LS 60.4%, CJ 58.0%, HD현대 53.0%, LG 47.4%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법안이 어떤 기준으로 최종 확정되느냐에 따라 이들 지주사가 승계 과정에서 취해온 저평가 유지 전략의 유인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증권업계 관계자의 지적대로 지주사 할인에는 자회사 가치, 주주환원, 지배구조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어 이 법안 하나로 할인율이 곧바로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좋은 뉴스처럼 보이는 '재검토 지시'가 실제로는 아무 실질적 변화 없이 국회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이번 사례에서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신호
가장 먼저 볼 것은 9월 정기국회 조세소위에서 어떤 기준이 채택되는지다. 정부 원안의 상대적 PBR 기준이 유지될지, 이소영 의원안의 절대적 PBR 0.8배 기준으로 확대될지에 따라 적용 대상 기업 수가 65곳에서 전체 상장사의 절반 수준까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두 번째는 시행 시기와 소급 적용 여부로, 국회 논의가 길어지면 실제 시행은 2027년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세 번째는 이번 사례가 앞으로 다른 밸류업 관련 입법에서도 반복될지 여부다. 만약 재검토 지시가 매번 상징적 제스처에 그친다면, 시장은 정부의 향후 정책 발언에 대해 실행 가능성을 더 냉정하게 할인해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마무리
이번 사례만 놓고 보면 정부가 주가누르기 방지법을 진짜로 실행할 의지가 확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대통령이 직접 재검토를 지시했음에도 실무 부처가 원안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안에 대한 정치적 우선순위가 중복상장 규제만큼 높지 않았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다만 이것이 정부의 개혁 의지 전반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소액주주 다수의 이해가 걸린 사안에서는 대통령 발언 한 번으로도 대기업이 백기를 든 사례가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정부의 자본시장 개혁은 파급력이 크고 표심에 직결되는 사안에는 강하게, 소수 대주주의 조직적 저항이 예상되는 사안에는 상대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선택적 실행 패턴을 보인다고 정리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앞으로 나오는 정부의 개혁 발표를 볼 때, 그 조치가 다수의 소액주주를 대변하는 사안인지 아니면 소수 대주주를 정조준하는 사안인지 구분해서 실행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